LEEAHN GALLERY, SEOUL, 12SEP – 25 OCT 2018




현재 전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작가는 상당히 많다. <월간미술>은 국내 미술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체류하며 작품활동을 하는 한국인 작가를 발굴 소개하는 장을 마련했다. 그 첫 작가로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조각가 윤희 Yoon-Hee 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가공되지 않은 거대한 덩어리를 발견하고 특정공간과 장소에 설치하는 그의 작업은 조각의 실존을 드러낸다.
직선의 시간에 비껴선 조각의 존재감
직선적인 시간의 밖에 : 윤희의 위치
“감춰진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없다.” – 중용(中庸)
윤희의 생활 공간이자 작업실은 프랑스 남부의 외딴 곳에 있는 오래된 축사를 손수 개수한 곳이다. 그의 조각은 이곳의 돌로 지어진 거친 아치형 기둥 사이, 판판하게 다져진 콘크리트 바닥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 작업실의 북쪽과 남쪽으로 난 넓은 유리창 사이로는 낮은 풀들이 자라는 바위와 돌덩어리의 야생적인 풍경이 보인다. 북쪽에서 들어오는 푸른 빛과 남쪽의 따뜻한 빛은 이 공간을 가로질러 금속 덩어리들을 휘감는다. 은빛 광채가 나올 때까지 닦여있거나 어두운 산화로 인해 무거워 보이는 알루미늄, 검게 변한 구리, 부드러운 금빛을 발하거나 깊은 붉은 색으로 물든 철, 화석이 된 나무처럼 보이는 티타늄과 번뜩이는 지르코늄, 어두운 그림자를 담고 있는 황동, 장미 빛을 띤 광택 없는 청동, 강렬한 녹색이 될 때까지 산화된 니켈, 푸른 납…이들 중 가장 가벼운 덩어리는 수백kg부터 무거운 것은 수 톤에 이른다. 대부분 수평으로 퍼져있고 바닥에서 그리 높지 않게 설치 되어 있다. 또 어떤 것은 수직으로 서 있거나 벽에 기대어 있다.

여기서는 순환적인 둥근 형태가 주를 이루지만 어떤 것들은 패어있기도 하다. 어떤 것은 물질의 밀도를 드러내는 뭉친 형태이다. 또 반구와 꼭지점 위에 서 있는 원뿔들을 볼 수 있다. 건물에서 멀지 않은 바깥에서는 더 큼직한 덩어리들을 볼 수 있다. 강력한 프레스로 압축한 강철 구(球)는 마치 바다 밑바닥에서 끌려 다닌 것처럼 닳아 있을 뿐 아니라, 부드러운 금빛 표면을 지닌 또 다른 구는상상 할 수 없는 화력이 관통하는 내부에 가득 물을 채우고 있다. 또 다른 곳에는 풀빛의 거무죽죽한 줄무늬가 새겨진 거대한 덩어리가 고인돌처럼 바위 무더기 위에 놓여있다. 그것들은 운석이나 화산에서 내뿜어 낸 용암 덩어리처럼 보인다. 심지어 어떤 것은 동물이나 식물, 인간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윤희의 조각은 연대가 없다. 그것들은 항상 거기에 있던 것 같다. 심미적 투기가 시장에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내놓는, 10년마다 주류미술이 바뀌는 그런 시대에 윤희의 작업은 유행과 매체, 미술사조들에 의해 출렁이는 직선적인 시간의 바깥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윤희가 다른 몇몇 조각가와의 연관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의 조각은 다른 조각을 그 어떤 것도, 심지어 은밀한 것이라 할지라도 참조하지 않는다. 스스로 역사화하는 것을 피함으로써 윤희는 공간에 한층 밀접하게 이어진, 훨씬 구체적인 시간적 지속 안에 위치한다.
공간과 장소, 조각을 중심으로 한 관객의 이동 그리고 그것이 놓이고, 위치하는 공간 안에서 느껴지는 그것의 존재감은 조각의 실존을 결정한다. 이 점에서 윤희는 1960년대 미국의 <아트 포럼>에 실린 <조각에 대한 노트>에서 로버트 모리스가 정의한 바에 따른 미니멀리즘의 계승자인 셈이다. 로버트 모리스는 오브제 자체는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브제 주위의 공간을 이용하는 관객과 그가 떠올리는 관념의 연관 속에서 파생되는 지각이 작품을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토니 스미스의 1.8m짜리 검은 입방체를 상기시키면서 로버트 모리스는 크기와 더불어 관객의 신체가 오브제에 대해 갖는 물리적 관계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물론 모리스의 안이 텅 빈, 질감이 없고 회색으로 칠해진 기하학적인 형태와 윤희의 육중하고 불규칙적인 덩어리들 간에는 그것들의 존재감 외에는 어떤 공통점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니멀 아트의 존재감은 거기에서 극적 효과를 볼 수밖에 없었던 마이클 프리드에게는 무척 불편한 것이었지만(<미술과 물성(objecthood)>을 보라), 윤희에게 그것은 또 다른 차원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그의 오브제들은 안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윤희의 조각들은 묵직한 덩어리들이지만 시각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관객들은 레이더처럼 이 사물들의 균질성과 집약된 물질의 양을 구체적으로 느낀다. 여기서는 오히려 아프리카조각에 대한 칼 아인슈타인의 서술을 떠올리는 것이 적절하겠다. 즉 조각에서 발산되는 존재감은 그것이 담고 있을 어떤 신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 뿐 아니라 조각가가 작품의 공간을 개념화하는 방식의 직접적인 결과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 존재감은 오브제가 어떤 상황에 놓이거나 특정한 장소에 위치함으로써 발산된다. 윤희의 작업은 이동하고 정치(定置)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과정을 거쳐 윤희는 대상을 활성화하고 그것에 감동의 여운을 주는 차원을 부여한다.
여유로운 정신
윤희는 조각(彫刻)하지 않는다. 그녀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서 옮길 단편(斷片)들을 골라낸다. 관객의 시선을 끌어내는 정치(定置)의 작업을 통해 작가는 이 단편들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말할 것도 없이 금속은 조각의 가장 오랜 재료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높은 밀도를 지닌 물체들이기도 한다. 프랑스 생디에 데 보주(Saint-Dié-des Vosges)의 분홍색 벽돌로 지어진 고딕 수도원에서 열린 전시에서 윤희는 이 우환과 함께 공간을 나누어 쓰면서 전부 15톤의 알루미늄, 철, 납, 구리 등으로 이루어진 다섯 개의 덩어리를 수도원 한쪽 화랑에 늘어놓았다. 윤희가 추구하는 존재감의 효과에 반드시 수반되는 각각의 작품이 지닌 밀도는 이 작품들에 내면성을 불어넣는다. 이 내면성은 의식을 위한 자리다. 그것이 만들어 내는 긴밀한 관계는 마치 서로 섞여 들어가듯 세계의 감정에 이르는 통로를 만들어 낸다.

윤희는 특히 제철소와 공장들, 중공업 단지를 찾아 다닌다. 이런 철저하게 난폭한 장소에서 이 섬약한 여성은 물질들의 변형과 고온의 작용, 그리고 액체에서 고체로 변이되고 분자들의 으깨짐과 같은 원초적 사물들의 감정으로 우리를 격렬하게 실어 나르는 모든 과정을 관찰한다. 이 모든 과정 사이에서 하나의 단편이 윤희에게 자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즉 그것은 우툴두툴함, 불순함 그리고 생산라인에서 꺼내어지는 순간 산화되면서 생긴 표면의 놀라운 회화성과 함께 취급과정에서 생긴 숱한 자국과 긁힘, 갈라짐 (이것은 표면을 덮고 있는, 말 그대로 완벽한 조각이라 할 수 있다.)을 지닌 것이면서 결국에는 관객들 앞에 아름다운 도자기처럼 무한한 섬세함으로 놓이는 바로 그런 것이다. 이 선택의 행위는, 제작의 과업과는 거리가 멀고 지적으로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상당한 육체적 노력을 요구한다.
산업현장으로서의 출동, 운송과 조작(操作)의 아주 복잡한 관리, 현상(現像)-드러냄의 작업과 마무리 작업(닦기, 솔로 문지르기, 바니시 바르기들)을 가한 뒤, 마지막으로 복잡한 조작을 숱하게 요구하는 설치에 이르는 과정이 바로 그런 것이다. 아주 당연히, 간단한 선택은 종종 단순한 행위로 대체될 수도 있고 이것은 윤희가 공간을 어떻게 느끼게 만드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압축된 덩어리의 내면성 안에서이든 아니면 개방적으로 혹은 전개된 형태로 펼쳐진 물질의 외면성에서이든 말이다. 구리 덩어리를 갈아 냄으로써 그 안의 본질적 색채를 드러내거나 용해한 금속을 넓게 펼치는 것은 윤희가 규칙적으로 데생을 통해 하는 일을 조각 재료로 계속해 나가는 일과 같다. 장인답지 않은 기법으로 그려내는 윤희의 데생들은 스스로 솟아 나온 자취 같다고 묘사할 수 있다. 텅 빈 커다란 공간에 나선과 원들, 가로지르는 수직이나 수평의 검은 흐름들은 최소한의 수단으로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윤희에게 데생은 여유로우면서도 집중된 정신을 유지시켜 주는 일종의 자기 단련인 셈이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2002년과 2003년에 제작된 청동과 알루미늄으로 주조된 원뿔들은 단단함과 연약함, 충만과 비어 있음의 대립에서 벗어나 있다. 꼭지점에 균형을 잡으면서 서 있는 알루미늄의 원뿔들은 윤이 나고 잘 부러질 것 같은 얇은 내벽으로 되어있다. 그것은 주형 안에 아무렇게나 뿌려져 뒤섞인 금속의 순간적 고형(固形)에 따라 얻어진 금속의 즉각적 다발인 셈이다. 작가 스스로 말하듯, 이 거친 작업과정은 제철업의 모든 규범을 벗어나는 것으로 원뿔의 내부에 환형(環形)과 부글거리는 형태의 어지러운 표면을 형성시킴으로써 빛을 포획하고 압축한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의 구체적 공간에 구멍처럼 패어 들어간 또 다른 공간을 탄생시킨다. <세 개의 그림자(Les Trois Ombres)>라는 작품은 의식적으로 로댕의 유명한 작품 제목을 차용하고 있다. 동일한 원추형 주형에서 뽑아 낸 세 개의 작품 – 엄격하게 동일한 로댕의 것과는 반대인- 은 이미 주물 붓기 기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필연적으로 다른 점을 보여준다. 윤희는 금속조각의 고전적인 재료인 청동을 선택했다. 알루미늄보다 용융점이 훨씬 높은 청동은 그 때문에 밀도가 훨씬 높고, 무거우며 점착성이 강한 재료이다. 그리고 1200°C의 높은 온도에서 그것을 붓는 일은 격렬한 작업이다. 질식할 듯한 열기와 눈을 뜨기 조차 어려운 연기 속에서 작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재료도 통제할 수 없게 끓거나 폭발하며 분출한다. 검증된 기술에서 나온 것이 아닌 원초적인 물질의 요구에서 비롯되는 결과로, 그대로 나온 것이 작품으로 받아들여진다.

수 톤의 덩어리를 운반하고 설치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미끄러지거나 중심을 잃는 경우에 언제든지 이런 극심한 육체적 피로와 고통, 상시적인 위험이 수반된다. 윤희에게 작품의 제작이 극단적인 과도함을 요구하지만 그것은 투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이행(移行)에 속한다. 그것은 바로 작품이 관객에게 불러일으키는 고요함에 더 잘 이르기 위한 것이다. 1996년 프랑스 젠느빌리에 예술센터에서 연 전시와 2003년 대구 시공갤러리에서 연 전시는 바닥까지 하얗게 칠해진 전통적 모더니즘의 화이트 큐브라고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작품들이 무중력 공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 작품들이 야기하는 것은 내면적인 평화, 세계와 나누는 일종의 공모, 물질적 공간의 전개 속에 존재하는 감정, 안과 바깥 사이의 조용한 삼투 같은 것이다.

윤희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자연을 환기 시킨다. (여기서 자연은 서구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도시의 그것도 아니고 산업의 그것도 아니면 풍경에나 있을 법한 좁은 의미의 자연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자연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형태의 생성과 갱신을 일으키는 창조•변형의 내적 원칙인 것이다. 윤희의 작업은 명백한 표현 양식을 드러낸다. 그는 관점이나 의도의 독자성 대신 스스로 나오는 것을 자발적으로 오게 내버려 두면서 총체성에 도달하려 시도한다.
조각 전시와 그 내력
작업실에 놓인 작품들은 각각 개별적으로 살아 움직일 수 있고 전체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일종의 타협점을 찾고 있다.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는 작품들의 광경은 각각의 작품을 개별적으로 강렬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작품마다 독특한 매력을 드러내고 있어 인상적이지만, 이것은 각각의 조각품을 최적의 공간적 배치를 통해 보여주는 방법은 아니다. 그러기에 윤희의 전시는 매번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 중 몇몇은 예외적인 것으로, 여기에서 다시 다루어질 만한 것이라 생각한다.
윤희가 제대로 모뉴먼트들을 야외에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전시를 통해서다. 가장 오래된 것은 1987년 프랑스 수도권에 있는 브레테니 쉬르 오르주(Brétigny-sur-Orge) 예술회관의 잔디에 세워진 일군의 기둥이다. 번뜩이는 18개의 거대한 검은색 강철관으로 된 이 작품은 각 변이 10m에 이르는 삼각형을 구성하고 있다. 1996년에는 거대한 산소절단기를 이용해 케이크처럼 썰어 놓은 20톤이 넘는 강철 덩어리를 파리 근교의 젠느빌리에 예술회관 마당에 설치한 바 있다. 1999년에는 브르타뉴에 있는 두르밴(Dourven)의 공원 숲 속에 항상 그곳에 있던 것처럼 풍경과 혼동을 일으키는 4톤이 넘는 거대한 강철 실타래를 가져다 좋았다. 이 세 작품은 아무런 계획 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습작도 준비작업도 없었다. 적당한 오브제를 원하는 순간에 만나기만 한다면 그것은 마치 그 자체로 자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06/07/08



500m²인 파리의 니키 디아나 마르코르 갤러리는 윤희에게 매우 정밀한 설치작업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90년의 <스스로(D’elle-méme)>는 여기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름 140cm의 알루미늄으로 된 반구형 잔 세 개 안에는 타르를 칠해 바른 듯한, 상형문자를 연상시키는 자국이 나타나 보인다. <내적인 재앙(Catastrophe intime)>이라는 제목의 1987년 작품은 이상한 운명을 겪었다. 1991년 프랑스 정부가 구매하여 샤토 드와롱(Château d’Oiron)의 고급스런 수장품 목록에 오르기 전 윤희의 눈에 띄어 작품으로 선택된 직후에 도난 당했던 것이다. 불가해한 우연으로 인해 그녀는 이 작품을 용광로에 들어가기 직전 어떤 공장에서 극적으로 되찾는다.


윤희의 작품들은 모두 이런 이야기들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들은 작품의 발견에 대한 것이며 다음으로는 작품들의 상이한 설치과정에서 비롯된다. 전시장소는 때로 복잡한 우회방식으로 밖에는 해결할 수밖에 없는 제한을 가하곤 한다. 그래서 <조용한 격렬함>이라는 작품을 니스의 피에르 콜트(Pierre Colt) 갤러리에 집어넣기 위해 당시 즉석에서 세운 강철 구조물을 오프닝 직전에 철거하고 다시 작품철거를 위해 재조립해야 하는 일을 해야 했다. 같은 경우로서 1996년 이브리 쉬르 센느(Ivery-sur-Seine)의 한 공장에서 열린 전시는 1톤이 조금 넘는 지름 198cm 의 알루미늄 반 구체 조각인 <미지(Inconnu)>의>라는 작품을 집어넣기에 문이 너무 작았다. 결국 이 낡은 공장의 거친 마루바닥 위에, 마치 폭풍을 만난 것처럼 표면이 갈기갈기 찢어진 또 다른 작품<잊을 수 없는(Inoubliable)>과 마주 놓였다. <미지의>는 호수 표면처럼 조용하게 일렁이는 정적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깊은 내성(內省)과 명상으로 초대하였다.

윤희의 가장 아름다운 전시 중의 하나는 브르타뉴의 바다를 향해 뻗은 숲으로 둘러싸인 공원 안에 예술회관으로 개조된 오래되고 독톡한 가옥인 두르벤 갤러리에서 열린 것으로, 장소 자체가 매우 놀라운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데생들은 유리창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오는 갤러리에 전시되었으며 조각들은 특별히 공원에 설치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3세기 전에 세관으로 지어진 작은 집 안에는 녹은 납 덩어리가 지면에 닿는 순간의 빗방울처럼 퍼져 있었고, 매 순간 그 색채를 바꾸는 바다 위의 바위로 이루어진 곶에는 재료의 순수한 색인 강렬한 장밋빛이 드러날 때까지 연마된, 구리로 된 작은 원통형 덩어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동양/서양
윤희의 작품에서 면면히 발견되는 고유한 동양적 사고는 오늘날 매우 찾아보기 어려운 태도로서, 전통의 문제를 비구상적 방식으로 재검토하는 이우환이나 고대의 화가 혹은 시인들의 방랑을 떠올리는 김 수자의 유목주의에 윤희를 가까이 접근시킨다. 그런데 윤희의 이러한 사고는 완연이 서구적인 맥락에서 발전되어 왔다. 브랑쿠시에게서 볼 수 있는 재료의 고양과 그것의 정치(定置), 리처드 세라가 강조한 괴체의 격렬함, 스미드슨에게서 보이는 엔트로피 개념(윤희는 <ASPHALT RUNDOWN>이나 <GLUE POUR>와 같은 1969년의 유명한 작품들을 참조한다). 쿠넬리스의 인문학적 관점에 근거한 도전처럼 윤희에게는 기억에 각인된 수 많은 리퍼런스가 존재한다. 윤희를 국제적 미술의 장에서 위치시킬 때 우리는 그러한 장르의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가 오직 그녀뿐임을 깨닫게 된다. 조각은 작가가 많지 않은 장르인데다 작가들은 대부분 조각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리처드 디콘은 자신의 의도대로 재료를 구부리면서 그것에 개입한다. 우리가 윤희의 위치를 이해하기 이해서는 먼저 일종의 역설을 다루어야 한다. 즉 바네사 비크로프트가 그러하듯이 사회와 그것의 허상과 구속과 폭력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 가장 작은 디테일에 이르는 모든 요소를 의식적으로 통제해야 하는 작가를 상정해야 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 정반대의 위치에서 윤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 ・ 유진상
1 – Dans les années 80 vous réalisez des installations avec des fragments de porcelaine, des rebuts métalliques. Mais, contrairement à d’autres artistes contemporains qui valorisent l’accumulation des déchets, la préoccupation « esthétique » est chez vous toujours présente. Ainsi la pièce que vous présentez à Bar-le-Duc joue à la fois avec « l’informe » et « la beauté ». Y a-t-il une continuité avec vos premières pièces ?
Mes premières pièces au début des années 80 étaient en général en terre et façonnées à la main. Lors d’un stage à la Manufacture de Sèvres, je fabriquais des ‘débris’ en appliquant un même acte répétitif qui nécessite de la persévérance, un travail long et même pénible ! J’appliquais de fines couches de porcelaine sur des pièces de tissu, puis je les détachais ; elles se repliaient sur-elle-mêmes, se froissaient ; ensuite elles étaient cuites, ce qui aboutissait à de très fines concrétions extrêmement fragiles, jamais identiques.
Au même moment, en visitant les ateliers de Sèvres, j’ai été attirée par des ‘bris’ (des supports de cuisson brisés en attente d’être transformés) que j’ai considérés comme une matière première. La brisure brutale et instantanée, la forme, la couleur la matière même (bien qu’il s’agisse aussi de porcelaine) les oppose à mes ‘débris’. J’ai fait une installation avec ces morceaux de porcelaine, ‘bris’ et ‘débris’ ensemble, dans leur état natif, tels quels, sans aucune intervention sur leur forme.
Cette expérience m’a incité à chercher des choses existantes : miroirs cassés, verre cassé, bois brûlé, etc. Et par la suite des métaux. Au départ, je les ai installées dans des niches, des éléments d’architecture en creux. C’étaient des fragments manipulables dont il se dégageait une picturalité. Après ces installations, j’ai cherché à constituer une unité de la pièce, la concevoir comme une vraie sculpture. C’est à ce moment que j’ai travaillé des formes soit massives, soit ouvertes, des masses hermétiques par opposition à des réceptacles. Le métal est devenu mon matériau principal et j’ai élaboré un processus de travail consistant à choisir et déplacer.

Depuis quelques années, je me suis focalisée sur le métal en fusion ; de cette manière je retrouve le travail à la main, mais avec plus d’intensité et d’ampleur. Parallèlement, j’ai réalisé un vrai travail de dessin tout au long de ces périodes.
2 – Arrangement d’objets ou coulées de métal en fusion, votre intervention semble chaque fois minimale. Laissez-vous les choses se faire ? Avez-vous « confiance » en elles ?
Sous l’aspect contradictoire et diversifié de ces travaux, le ‘non-agir’ est une constante dans mon travail ; il lui donne je crois sa cohérence. Tout au long de mon parcours, je n’ai jamais essayé de créer une forme : elle découle du processus que je mets en place. La forme vient d’elle-même, ce qui engendre sa propre manière d’être, sa propre énergie : en enclenchant le ‘non-agir’, les pièces viennent d’elles-mêmes. Depuis le façonnage jusqu’au déplacement, j’opère un minimum d’actes intentionnels dans une volonté de maximisation du ‘vide’. Le vide n’est pas la vacuité au sens occidental, ni le contraire du plein – le vide implique la réceptivité ou la potentialité. Etre ‘de soi-même’, c’est la nature, l’état de nature. Nous existons dans le ‘ciel-terre’ qui, dans la conception chinoise, désigne la nature, le cosmos, l’univers. L’existence de toute l’étendue se déploie selon deux pôles – yin yang. L’énergie circule entre ces deux pôles. Je ne le cherche pas volontairement ni consciemment, mais j’ai l’impression que j’ai tendance à aller à l’extrême dans ce va-et-vient entre deux polarités, opposant d’un côté des masses immuables de quelques tonnes, de l’autre des choses allant jusqu’à l’état de poussière, une solidité indestructible face à une fragilité extrême, des choses qui se briseraient dès qu’on les toucherait. C’est aussi la bascule entre passif et actif, entre l’instantané et la durée d’exécution jusqu’à l’épuisement, dans le cas de mes pastels gras par exemple.


3 – Saisie d’instant prend la suite d’un travail sur le cône commencé avec Trois ombres. Cette forme vous attire-t-elle pour des raisons particulières, ou est-elle choisie arbitrairement car susceptible de déclinaisons infinies ?
Les cercles, les sphères, les cônes, surtout les spirales correspondent à des formes élémentaires, fondamentales, universelles, qui évoquent l’infini. J’ai fait beaucoup de dessins en mouvement de spirale ou de cercle. A chaque fois le moment où la forme apparaît est un peu un suspens. C’est un acte, un moment de concentration, ce moment est un instant lié a l’infini. Chaque acte a son intensité spécifique : ce qui apparaît en résulte.

Il y a beaucoup d’affinité entre mes dessins et mes sculptures. De l’état liquide à l’état solide, c’est le titre d’une petite plaquette éditée à l’occasion d’une exposition de dessins dans les années 90. Les trois ombres vient de là, des dessins en spirale. Le métal liquide devient solide en refroidissant. Dans des séries de dessins que j’appelle de gauche à droite, bichrome, cercle, le liquide est jeté instantanément. C’est aussi rapide que jeter le métal en fusion. C’est de cette manière que j’ai fait la pièce que je présente aujourd’hui. La température du métal, celle du support, la quantité versée, tout ces éléments font apparaitre une forme instantanément qui est saisie, qui ne peut jamais être pareille, et qui s’arrête figée.


4 – Le choix du titre vise t-il à orienter le regard du spectateur ? Dans ce cas Saisie d’instant est-il une invitation à réfléchir sur le geste même de la création ?
Je ne cherche pas à orienter le regard du spectateur en nommant l’oeuvre. Le sens et la sensibilité sont à rechercher dans les affects qui pourront s’y projeter. Pour ne pas les appeler ‘sans titre’, je donne un titre pour identifier les pièces, tout simplement. Dans le cas de Saisie d’instant : c’est une évidence ! Je suis naturellement imprégnée de culture coréenne, mais je vis depuis plus de 25 ans entre occident et orient, dans ces deux cultures opposées et complémentaires. Je n’ai pas assimilé complètement la culture occidentale, c’est peut-être pourquoi, parfois je fais référence à des grands maîtres occidentaux, par exemple Les trois ombres de Rodin. Après avoir fait ma pièce, je me suis rendue compte que je suivais Rodin tout en allant au contraire… La technique du bronze est ancrée dans la pratique de la sculpture depuis des millénaires : l’artiste exécute un modèle en plâtre ou en terre à partir duquel le fondeur va réaliser un moule qui permettra de tirer en bronze, par coulage du métal, autant d’exemplaires que l’on veut. Dans Les trois ombres, Rodin a installé trois figures identiques (trois tirages du même modèle) de manière qu’elles apparaissent différentes. Moi, j’ai utilisé un objet trouvé, un cône d’acier que j’ai décidé d’utiliser comme moule et à partir duquel j’ai fait trois pièces différentes en y versant directement le bronze liquide. Les trois pièces sont installées ensemble et forment un travail.


5 – Certains visiteurs disent reconnaître dans Saisie d’instant, des écorces abandonnées, des mues… Comme si votre sculpture cherchait à rendre compte d’une métamorphose…
J’ai découvert Ligier Richier à Bar-le-Duc. J’ai été saisie par l’oeuvre et sa relation avec mon travail. Le Transi montre un état transitoire, le passage d’un état à l’autre, la transformation mouvante où l’instantané ouvre l’éternité.
1-Tes sculptures résultent d’un choix de matériaux et de formes préexistants ; en quoi ce choix se différencie-t-il des ready-made ?
Mes sculptures sont « ready-made » au sens banalisé du terme : ce sont des pièces seulement choisies, sans aucune intervention de ma part. Au sens précis du concept, elles ne sont pas des ready-made dans la mesure où elles ne sont pas fabriquées d’une part, dans la mesure où elles sont uniques d’autre part. Le ready-made duchampien est un objet manufacturé produit en série, donc construit et éventuellement composé (y compris par l’artiste lui-même). A l’inverse, mes pièces relèvent toujours du domaine des matières premières et en ce sens rejoignent la sculpture qui est toujours faite à partir d’un matériau donné. C’est pourquoi je les baptise systématiquement « sculptures » ; c’est pourquoi je me définis comme « sculpteur ». Finalement, je préfère me référer aux mégalithes (qui existent aussi bien en Corée qu’en Bretagne) plutôt qu’au ready-made. Pour les artistes de la préhistoire, il s’agissait de choisir des pierres, les déplacer et les installer.
Sur le plan du sens il y a une plus grande différence. Chez Duchamp, le sens d’un ready-made est indirect, intellectualisé, relié à une culture historique. Mes sculptures fonctionnent de façon directe au niveau de la présence de l’objet lui-même.
2-Tu parles à propos de tes sculptures de prélèvement d’un fragment de nature. Or ce fragment de nature a déjà été transformé par l’action de l’homme. Est-ce cette transformation qui t’intéresse ?
Mes pièces sont comme un fragment de la nature dans le sens où elles montrent un état transitoire qui évoque les processus de la transformation de la matière liés au temps, à l’entropie. Les matières qui se trouvent dans un état transitoire n’ont ni but ni fonction : issues d’une procédure, elles disparaîtront par une autre procédure. Elles existent par la nécessité même de la transformation. Quand il y a formation, il y a aussi disparition. Les matériaux qui m’intéressent révèlent ce double aspect.

4-L’intention passe chez toi par un retrait du faire, qu’il relève du modelage ou de la taille directe. On peut évoquer à ce propos le non agir de Lao Tseu. Pourrais-tu nous parler de ce paradoxe apparent d’une sculpture qui en passe par le «non faire » ?
A priori on considère qu’il faut une maîtrise parfaite de la part de l’artiste. Depuis toujours l’artiste développe des techniques souvent complexes pour matérialiser son concept. La création passe par cet artifice du langage. Paradoxalement, j’évite l’une et l’autre et je substitue une attitude passive au comportement habituellement actif de l’artiste. Pour moi, le non agir, c’est simplement prendre ce qui est là et c’est l’acte le plus simple pour comprendre la nature. Cet acte primaire signifie beaucoup plus que l’action de sculpter qui reste très liée à des problèmes de technique et de virtuosité. Prendre tels quels des fragments de matériaux prélevés dans le cours d’un processus de fabrication industrielle, donc immobilisés à une étape de leur transformation, cela manifeste une non volonté de les fabriquer. Par leur simple mise en place dans l’espace, les fragments que j’ai choisis existent sans autre sens que celui d’être là.
Mon intention en posant une problématique de la sculpture, concerne la relation entre le monde fini et la nature infinie. J’ai un projet utopique depuis longtemps : faire un alignement avec des blocs métalliques provenant du monde industriel. Pour moi l’attitude des peuples qui ont érigé les menhirs est exemplaire par la compréhension de la nature qu’elle révèle et par sa simplicité. Ils ont produit du sens en choisissant, en déplaçant, en installant des pierres énormes qui se sont formées par le temps. L’alignement des pierres permet d’occuper l’espace et engendre une unité de la forme avec des pierres néanmoins informes.
5-Si tu n’interviens pas sur le matériau tu le choisis. On peut distinguer schématiquement trois moments : le choix, le retrait de la forme de son lieu d’origine et enfin la décision de la revendiquer comme sculpture. Comment se jouent ces temps différents et ces décisions ?
D’une manière générale, je choisis des blocs de métal massifs. Je n’ai pas de critères rationnels systématiques. Il s’agit plutôt d’une rencontre. Le bloc choisi ne devient pas obligatoirement une sculpture ; il faut d’abord un temps plus ou moins long qui passe en général par des manipulations. On entre ensuite dans la phase de mise en place qui est déterminante car l’œuvre s’achève quand s’établit une correspondance avec l’espace. La relation entre le plein et le vide doit engendrer à la fois une tension et un calme. La sculpture existe par cette combinaison entre un espace et un bloc de matière.
Contrairement à la violence de la manipulation qu’elle implique, la sculpture doit avoir simplement sa présence réelle et engendrer son propre silence. L’œuvre ne doit pas s’imposer ; elle ne doit pas être troublante, ni spectaculaire pour que le spectateur puisse trouver un calme propice à la contemplation.
L’œuvre ne représente pas l’image d’un objet ; elle se représente elle-même. Elle trouve sa vie par le déplacement du spectateur dans l’espace. Cette situation forme un ensemble qui lui donne existence.
Je travaille actuellement sur un projet qui consisterait à installer de façon permanente un certain nombre de pièces dans des espaces dont l’architecture même serait maîtrisée afin d’obtenir les meilleures qualités spatiales. L’ensemble serait lui-même envisagé dans un site cohérent avec le sens général de mon oeuvre. Je pense avoir trouvé l’endroit juste…

6-Qu’en est-il de l’énergie dans ta structure ?
C’est la masse qui est le contenu de ma sculpture. Le poids, la haute densité du métal, expriment la concentration. La force, l’énergie qui sont intériorisées dans la masse se dégagent vers l’extérieur.
7-Comment se noue la relation entre l’énergie de la forme et le non agir dans ton œuvre ?
Le non agir ne concerne que la fabrication de l’objet, sa forme, mais cet aspect ne représente qu’une partie de la sculpture. Toutes les autres phases du travail sont très actives au contraire. Les manipulations, la mise en place ne sont pas des tâches techniques mais des opérations qui influent sur le sens : elles impliquent des décisions déterminantes. Ce n’est pas moi qui donne l’énergie à ma sculpture ; mon travail consiste à extraire l’énergie potentielle du bloc métallique, à la faire apparaître par sa mise en espace.
8-Pourrais-tu évoquer les rapports entre le fini de tes formes/sculptures et l’infini de la matière nature ?
Par définition, je choisis mes pièces dans un état fondamentalement et totalement non-fini par rapport au concept artistique de finition. Ce non-fini évoque l’instabilité, le changement potentiel sur le seuil duquel l’objet entier est situé. Cet état limite renvoie à l’idée de l’infinité, c’est à dire la transformation perpétuelle.
9- Tu as déjà investi des lieux avec des matériaux (ex : fenêtre de l’atelier obstruée par du métal, volume de fil de cuivre installé dans une excavation peu profonde du sol à la Jeune Sculpture). Ces œuvres sont-elles devenues autonomes ou relèvent-elles d’une relation au lieu différente par rapport à tes autres sculptures ?
Tu évoques là des travaux assez anciens qui remontent aux années 85/86. Ces œuvres étaient plutôt in situ. Elles avaient été conçues par rapport à des éléments architecturaux pouvant jouer le rôle de contenants ou de cadres trouvés. Le caractère du lieu, les dimensions et les emplacements des niches ou des creux ont déterminé le choix des matériaux que j’y entassais. J’ai choisi des matériaux de récupération parce qu’ils sont porteurs d’une charge affective forte, presque magique, qui évoque les origines de la matière. J’ai supprimé toute référence à l’objet implicite pour éviter l’anecdote, le particulier, le descriptif. J’ai recherché la plus grande unité plastique, une concentration très dense des éléments, une cohérence au niveau de la texture du matériau. Mon intervention concernait essentiellement la dynamique de la mise en place et la maîtrise des échelles.
Leur relation au lieu est donc spécifique. Toutefois, elles ont aussi leur autonomie dans la mesure où elles peuvent être « rejouées » à la manière d’une partition musicale dans d’autres lieux. Ces pièces correspondent à un moment bien défini de mon évolution.

10-A la différence de tes sculptures il y a une très grande présence du faire dans tes dessins c’est même le lieu ou ton application physique est la plus forte. Pourrais-tu nous parler de cette symétrie et de la différence qu’il y a entre tes dessins et tes sculptures ? En effet celui qui découvre ton œuvre est fréquemment surpris de ce paradoxe que tu lui proposes d’une sculpture sans action et d’un dessin lieu de l’action.
Comme je l’expliquais précédemment, les sculptures mettent en jeu un investissement physique souvent violent même s’il n’est pas visible. A l’inverse, les dessins sont beaucoup moins physiques qu’ils n’y paraissent : ils sont essentiellement le résultat d’une concentration intense. Comme pour la sculpture, la forme est le résultat d’un « laisser-aller ».
L’économie de l’actif et du passif est inverse dans le dessin par rapport à la sculpture. Il y a une sorte de symétrie entre les deux activités. Il en va de même dans tous les phénomènes de l’univers où cette dialectique est inévitable. Ma problématique s’est constituée à partir de cette question.
11-Tes dessins jouent sur la concentration et l’expansion de la forme. Supposent-ils un temps préalable à leur exécution ? Quelle est la part du hasard dans leur réalisation et enfin comment se nouent les relations ou les oppositions entre la maîtrise et non maîtrise en eux ?
Au moment de dessiner, je prends la décision de donner un certain mouvement. Je l’induis, je le laisse se faire seul. Je ne dessine jamais en prévoyant le résultat. Je n’ai pas l’intention de maîtriser, j’essaye seulement de me concentrer. Par exemple quand je dessine en répétant le mouvement de spirale, pendant ce temps très bref j’ai le sentiment que la concentration me surpasse. J’ai l’impression de perdre presque la conscience. Cela donne un résultat inattendu.
La concentration au moment voulu, la force et la vitesse du mouvement, la quantité d’eau versée et la quantité de pigment du bâton fondu ne sont jamais calculées ou mesurées par avance. Tous ces éléments permettent d’obtenir la trace de l’ensemble. On peut considérer le contour de la masse dessinée et les giclures comme le fait du hasard. Si je prévoyais trop le résultat, si j’en calculais tous les effets, le dessin serait sans tension, sans intensité, sans fraîcheur. Justement cette volonté de laisser une partie s’organiser d’elle-même me permet d’obtenir des dessins spontanés, non-figés.
En 83 et 84, j’ai fait des dessins tridimensionnels en fil de fer, en corde de piano, en plomb etc. J’ai cherché à comprendre les propriétés spécifiques du matériau pour qu’il se libère de lui-même.
Je ne considère pas que le résultat obtenu est issu d’un pur hasard. Je vois cela comme une sorte d’intuition en relation avec ce qu’on appelle «le souffle vital» dont on parle dans la conception philosophique chinoise de l’univers.

12- Qu’est-ce qui te fais accepter ou refuser un dessin ?
Principalement, c’est la relation entre le plein et le vide qui est déterminante. Si l’élément graphique est satisfaisant en lui-même, il arrive qu’il soit dans un rapport incertain avec le blanc du papier. Quand j’utilise des formes qui remplissent la surface, la gestion de cette relation est plus simple. Cela devient complexe quand la part du vide est très développée, dans les dessins de spirales en particulier où le moindre événement plastique au cours de l’exécution va jouer un rôle important. Il suffit alors de très peu pour que la pièce soit réussie ou ratée. En fait, je crois que la réussite est surtout liée à l’intensité de ma concentration ; pendant l’exécution je sais déjà presque toujours si le dessin va être réussi ou raté.

13- Comment choisis-tu pour tes dessins ton support et ton médium ? Le format a t-il une importance ? Quelles sont les conséquences que ces différents paramètres peuvent avoir sur ton travail ?
Depuis que je fais des grands dessins, mon support et mon médium n’ont pas beaucoup changé : c’est principalement du pastel tendre. Le pastel tendre offre le noir le plus profond et le plus intense qui soit tout en étant d’une matité très évidente. Il est impossible de trouver ces deux caractères dans les autres médiums. J’utilise le pastel d’une façon assez particulière qui fait intervenir d’une part le bâton de pigments, d’autre part de l’eau. C’est une sorte d’interpénétration du liquide et du solide qui se réalise pendant l’acte. Mon support est du vélin d’Arches épais qui accepte facilement la charge liquide et qui absorbe correctement les pigments.
Mon format préféré, presque toujours identique, est lié à l’échelle de mon corps et à l’ampleur de mon champ visuel, sachant que je dessine à l’horizontale, dans une position fixe. Je ne cherche pas un développement de l’espace ; j’essaye de me situer dans un espace donné.
Il m’arrive d’utiliser d’autres matériaux comme le bâton d’huile ou l’encre. A chaque médium correspond une manière de dessiner particulière, car chaque matériau a sa propre logique et induit son propre langage.

14- Par certains aspects, tes dessins mobilisent des procédés propres à l’art contemporain et à l’art traditionnel oriental (automatisme, calligraphie). Il n’y a pourtant ni écriture ni représentation. Est-ce le fait que ce qui les porte semble être l’énergie d’une pensée et du corps prenant forme ?
Ce n’est pas à proprement parler l’énergie du corps, ni celle d’une pensée, mais plutôt une vitalité qui émerge. Ce que je représente dans le dessin, c’est l’action instantanée dans le moment même, la présence du plein et du vide, la tension et la libération, la rapidité et la lenteur, la violence et le calme. Il n’y a ni image, ni thème. Il y a un mouvement, en train de se transformer, au seuil d’une transformation autre, comme dans les sculptures.

15- Qu’est ce qui t’as fais éliminer tout autre rapport de couleur que celui du noir et blanc ?
Je ne me suis pas du tout posé le problème de la couleur car la question était : que devais-je dessiner ? J’ai pris le papier qui est généralement blanc et un outil comme l’encre ou le crayon qui sont généralement noirs. Ce qui n’était au départ qu’une donnée, je l’ai par la suite pleinement assumé en accentuant cette opposition. En fait, les deux couleurs étant violemment opposées, je les conçois dans une sorte d’affrontement qui rend l’exercice plus intense.
Très récemment, j’ai utilisé un pastel noir et un pastel blanc pour travailler un même dessin ; cela produit des gris qui rendent plus lisibles l’action qui produit le dessin…

16- Comment se posent dans ton œuvre les relations entre la pensée orientale et l’expérience formelle et théorique de l’art occidental ?
Quand je suis arrivée en France, j’ai été frappée par le travail de Courbet qui m’apparaissait comme l’artiste le plus opposé qui soit à l’art oriental. Ce qui est très fort dans l’art occidental c’est cette liberté du langage plastique qui se développe tout au long du XXe siècle. J’ai été spontanément sensible à cette liberté et à l’époque je n’avais pas conscience de faire de l’art oriental ou occidental ; ces catégories n’avaient tout simplement pas de sens pour moi. Par contre, ce qui m’apparaissait comme une limite dans l’art occidental, c’est une rationalité exacerbée qui empêche l’épanouissement de la spontanéité, de l’intuition, qui est souvent défavorable à la fraîcheur de l’expression. Il est assez caractéristique de constater que l’invention assez extraordinaire de l’art des années 70 est contrecarrée par des règles incroyablement raides, des interdictions de peindre… L’idéologie de l’avant-garde qui était devenue de plus en plus contraignante, liée à une culture historique, est contraire au mode de pensée oriental, en l’occurrence à mon mode de pensée.
Ce qui serait occidental dans mon travail, c’est le vocabulaire plastique, ces sculptures « ready made », une manière de gérer l’espace et l’échelle… Par contre, mon attitude, mes concepts, le sens même de mon œuvre sont sûrement issus de ma culture. Ma manière de procéder, où domine une position de passivité et une recherche de simplicité, est je crois très orientale. C’est le contraire de l’attitude de Richard Serra qui recherche les performances technologiques ou les prouesses d’équilibre à travers des sculptures généralement démesurées. Mes pièces prennent toujours leur forme naturellement, elles se font d’elles-mêmes, sans effort apparent. Le parallèle avec Serra illustre bien mon point de vue car nous travaillons les mêmes matériaux, dans des masses importantes, sur le même arrière plan défini par l’industrie métallurgique.

17- Par certains aspects ton œuvre peut évoquer ou rencontrer des artistes comme : Carl André, Jean Degottex, Lee U Fan, Richard Long, Robert Morris ou Robert Smithon. Quelles sont les relations ou les différences que tu vois à leur égard ?
Pour continuer sur les américains, je dirai que j’ai vu de belles pièces de Carl Andre il est vrai, mais ce qui m’est incompréhensible, c’est la systématisation. Par contre le travail de Smithson m’attire à travers sa démarche de choix et de déplacement ( Asphalt Lump, 1969 ), sa manière de laisser aller les choses d’elles-mêmes dans sa grande coulée d’asphalte par exemple (Asphalt Rundown, 1969 ), son intérêt pour la spirale comme forme cosmique, ses idées sur l’énergie et l’entropie…Cela dit, pour en rester à la même génération, je me sens beaucoup plus proche, au niveau de l’échelle et de la sensibilité, des artistes européens de l’arte povera, des gens comme Mario Merz, Kounellis, Anselmo…
Je vois par exemple un artiste comme Richard Long exactement à l’opposé de moi. Il trace un contour et le remplit avec des pierres ou des traces dessinées ce qui représente une attitude typiquement occidentale. Moi je pars toujours de l’intérieur de la forme pour aller vers un extérieur ouvert, potentiel, en devenir.
Je connais le travail de Lee U Fan depuis longtemps et dès le début, c’est une œuvre qui m’a beaucoup impressionnée par la coexistence d’une radicalité comparable à celle des artistes occidentaux, et d’une dimension orientale très affirmée. Il y a souvent un côté provincial chez les artistes orientaux contemporains qu’il n’a jamais eu car il a d’emblée utilisé les références de l’art international le plus avancé tout en préservant une sensibilité authentiquement coréenne. Pour moi, c’est une œuvre tout à fait exemplaire déjà à ce niveau et je crois qu’il est un des grands artistes du siècle. Sur un plan plus personnel, je me sens concernée par ce travail basé sur l’harmonie des contraires, l’économie des moyens, la simplicité, une sorte de réserve en même temps qu’une grande autorité dans la gestion de l’espace. Aussi bien dans sa peinture que dans sa sculpture, il pose une relation ( entre l’empreinte de pinceau et le blanc de la toile, entre la pierre et la plaque d’acier) qu’il laisse se jouer d’elle-même.
Yoon-Hee vit dans le sud de la France dans une ancienne bergerie isolée qu’elle a entièrement restaurée. Dans son atelier, entre des séries d’arcades rustiques en pierre, sur un sol de béton parfaitement tendu, les sculptures prennent place. Au nord et au sud, de vastes baies vitrées laissent voir un paysage sauvage de roches et de cailloux où pousse une végétation rase. La lumière, bleue au nord, chaude au sud, illumine les espaces et enveloppe les pièces métalliques. Aluminium décapé jusqu’au blanc argenté ou lourd d’une sombre oxydation, cuivre noirci, acier aux reflets dorés ou d’un rouge profond, titane aux allures de bois pétrifié, zirconium luisant, laiton marqué d’ombres noires, bronze mat aux accents roses, nickel oxydé jusqu’au vert vif, plomb bleu… Ce sont d’abord des masses dont les plus légères pèsent quelques centaines de kilos et les plus importantes plusieurs tonnes. La plupart se développent horizontalement et se tiennent dans la proximité du sol ; quelques-unes se dressent ou s’appuient au mur.

Les formes circulaires, arrondies, dominent ; des formes compactes qui révèlent la densité du matériau. Quelques pièces sont creuses: ce sont des demi-sphères et des cônes dressés sur la pointe. A l’extérieur, à proximité du bâtiment, on découvre des blocs plus importants: une boule d’acier compressée par une forge puissante, usée comme si elle avait été traînée sur des fonds marins, une autre boule dont la surface est douce et dorée, transpercée sous l’effet d’un feu d’une rare intensité laisse voir qu’elle est remplie d’eau, enfin une énorme masse noire striée de taches verdâtres, posée comme un dolmen au-dessus d’un amas de roches. On pense à des météorites, à des blocs de lave expulsés d’un volcan; certaines formes évoquent l’animal, voire le végétal ou même l’humain.

Présence de la sculpture
Les sculptures de Yoon-Hee n’ont pas d’âge. On a l’impression qu’elles sont là depuis toujours. Dans une époque où la surenchère esthétique jette sans cesse sur le marché de nouveaux produits, où chaque décennie se clôt sur un style dominant, le travail de Yoon-Hee apparaît hors du temps linéaire rythmé par la mode, les médias, les mouvements artistiques. La sculpture de Yoon-Hee prend place dans un présent qui s’étire, qui s’installe, qui s’étale. Même si elle se reconnaît une parenté avec certains sculpteurs, sa sculpture n’exhibe aucune référence, même discrète, à d’autres œuvres. Evitant de s’historiciser, elle se situe dans une durée plus concrète, plus étroitement liée à l’espace.
A l’espace et au site. Le déplacement du spectateur par rapport à la pièce, sa présence dans la salle où elle est installée, positionnée, déterminent l’existence même de celle-ci. En cela d’ailleurs, Yoon-Hee est bien l’héritière du minimalisme tel que Robert Morris a pu le définir dans ses «Notes on sculpture» publiées dans la revue américaine Artforum dans les années soixante. Robert Morris insistait sur le fait que l’objet en soi n’est pas l’œuvre; c’est le déplacement du spectateur dans l’espace autour de l’objet, la perception qu’il en a par rapport à l’idée qu’il s’en fait qui constituent l’œuvre; faisant référence au fameux cube noir de 1.80 mètre de côté de Tony Smith, Robert Morris mettait en avant la question de l’échelle et donc la relation physique de l’objet avec le corps du spectateur. Certes, il n’y a nul point commun entre les volumes creux et sans matière, géométriques et peints en gris de Morris et les blocs massifs et irréguliers de Yoon-Hee, si ce n’est peut-être leur «présence». Cette présence de l’art minimal qui gênait tant Michael Fried qui y voyait un effet de théâtralité (voir le fameux texte «Art and objecthood»), elle prend une tout autre dimension chez Yoon-Hee car ses objets sont pleins. Ce sont des masses imposantes, mais pas seulement visuellement car, un peu à la manière d’un radar, le spectateur éprouve concrètement la consistance de ces objets, la quantité de matière concentrée qu’ils sont. Il faudrait plutôt évoquer ici les descriptions de sculptures africaines par Carl Einstein; la présence qui en émane n’est pas seulement la conséquence du fait qu’elles contiennent telle ou telle divinité, elle est la résultante directe de la manière dont le sculpteur a conçu l’espace de son œuvre. Cette présence se dégage de l’objet dès lors qu’il est en situation, mis en place dans un lieu spécifique. Tout le travail de Yoon-Hee consiste à déplacer et mettre en place. C’est un processus qui active l’objet, lui confère véritablement une dimension auratique.
Car Yoon-Hee ne sculpte pas, elle parcourt le monde et prélève, ici ou là un fragment qu’elle déplace. Par la mise en place qui convoque le regard du spectateur, elle donne vie à ce fragment. Certes, les métaux sont parmi les plus anciens matériaux de la sculpture; mais surtout ils sont parmi les corps les plus denses de l’univers. Dans une exposition à Saint-Dié-des-Vosges en France, dans le cloître gothique en pierre rose qu’elle partageait avec Lee Ufan, Yoon-Hee avait aligné sur l’un des côtés du cloître cinq blocs, aluminium, acier, plomb et cuivre, une quinzaine de tonnes au total. Indispensable à l’effet de présence qu’elle recherche, la densité confère à chaque pièce une intériorité. Cette intériorité est une place pour la conscience; l’intimité qu’elle engendre donne, de façon fusionnelle, accès à un sentiment du monde.

Ainsi, Yoon-Hee parcourt surtout l’espace de la métallurgie, les usines, l’industrie lourde… Dans ces lieux de violence pure, cette femme fragile va observer les transformations de la matière, l’action des hautes températures, le passage du liquide au solide, l’écrasement des molécules, toutes ces opérations qui nous ramènent brutalement au sentiment des choses primordiales. Dans un entre-deux du processus, un fragment va se présenter à elle comme une évidence; avec ses aspérités, son impureté, son étonnante picturalité due aux oxydations qui apparaissent à ce moment où il est soustrait à la chaîne industrielle, portant les multiples traces, éraflures et incisions consécutives à sa manutention (ce sont parfois de véritables gravures toutes faites qui en couvrent la surface) et finalement posé là, devant le spectateur, avec une infinie délicatesse, comme on ferait avec une fine pièce de porcelaine.
Pour intellectuel et détaché des tâches d’exécution qu’il puisse paraître, cet acte du choix implique néanmoins un investissement physique considérable: la présence sur les sites industriels, la gestion souvent très complexe du transport et de la manutention, le travail de «révélation» et de finition (nettoyage, brossage, vernis, etc.) et finalement la mise en place qui nécessite parfois un nombre important de manipulations. C’est assez naturellement qu’au simple choix se substituent parfois de simples actes, et cela dépend de la manière dont Yoon-Hee veut faire sentir l’espace, dans l’intériorité du bloc concentré ou dans l’extériorité de la matière répandue, ouverte ou déployée. En meulant un bloc de cuivre pour en faire jaillir la couleur intrinsèque ou en répandant du métal en fusion, elle ne fait que poursuivre avec les matériaux de la sculpture ce qu’elle pratique régulièrement en dessinant. Réalisé selon une technique aussi peu artisanale que possible, on pourrait décrire chaque dessin comme un tracé qui jaillit de lui-même. Spirales, cercles, flux verticaux ou horizontaux tracés en noir sur de grandes surfaces vides, l’économie des moyens permet à l’effet de se déployer au maximum. Pour Yoon-Hee, la pratique du dessin est en quelque sorte une discipline qui maintient son esprit disponible et concentré.
Les cônes coulés en bronze et en aluminium, réalisés en 2002 et 2003, déclinent l’opposition du solide et du fragile, du plein et du vide. Posés en équilibre sur la pointe, les cônes d’aluminium sont formés d’une fine paroi brillante et cassante, une sorte de tressage métallique spontané obtenu par la solidification instantanée du métal en fusion jeté librement à l’intérieur du moule. Ce travail sauvage, comme le dit Yoon-Hee elle-même, en dehors de toutes les règles du métier de fondeur, produit à l’intérieur des cônes une surface agitée de vagues et de moutonnements qui capte la lumière et la concentre, donnant naissance à un autre espace qui creuse comme un trou dans l’espace concret du réel.
La pièce intitulée «Les trois ombres» reprend sciemment le titre d’une célèbre sculpture de Rodin. Réalisés à partir du même moule conique, les trois éléments–contrairement à ceux de Rodin qui sont rigoureusement identiques–diffèrent nécessairement par la technique même du coulage. Yoon-Hee a choisi le bronze, matériau classique de la sculpture métallique. Le bronze, dont le point de fusion est beaucoup plus élevé que celui de l’aluminium, est aussi plus dense, donc plus lourd, et plus visqueux. Le jeter à 1200° dans les moules est une opération d’une rare violence; il faut travailler dans une chaleur suffocante, dans une fumée aveuglante, avec un matériau qui bouillonne, explose, jaillit de façon incontrôlable. Résultat non d’une technologie éprouvée, mais d’une sollicitation de la matière primordiale, ce qui vient ainsi est accepté comme œuvre.

On retrouve la même exténuation physique, la même angoisse, le même danger permanent quand il s’agit de transporter et d’installer les blocs de plusieurs tonnes qui risquent à tout instant de glisser, de basculer. Chez Yoon-Hee, si l’exécution porte l’excès à son comble, ce n’est jamais une lutte mais plutôt un passage; c’est pour mieux aboutir à ce calme que la pièce doit induire chez le spectateur. A ce titre les expositions au Centre d’art de Gennevilliers en 1996, puis à la galerie Ci-Gong à Daegu en 2003, des espaces blancs immaculés dont le sol même est peint en blanc, parfaitement dans la tradition moderniste du «white cube» , ont donné lieu à des installations où les pièces semblaient flotter dans une sorte d’apesanteur ; en découlaient une paix intérieure, une sorte de connivence avec le monde, un sentiment d’être là dans le déploiement de l’étendue, une osmose silencieuse entre dedans et dehors.

Yoon-Hee évoque la nature à propos de son travail( il faut se garder de l’entendre au sens étroit des occidentaux pour qui, ni urbaine, ni industrielle, la nature serait en quelque sorte dans le paysage ). La nature, c’est ce qui existe de soi-même, c’est le principe interne de création/transformation par lequel les formes s’engendrent et se renouvellent. Le travail de Yoon-Hee convoque une forme d’évidence; délaissant la particularité du point de vue ou de l’intention, elle cherche à atteindre une globalité en laissant venir ce qui vient de soi-même, spontanément.
Expositions et histoires de sculptures
Dans l’atelier, l’installation des pièces implique une sorte de compromis afin que chacune d’elles soit viable individuellement et que l’ensemble le soit aussi. Si cette vision panoramique de l’œuvre est impressionnante par l’unité qui s’en dégage et le charme particulier qui s’attache à chaque pièce, elle ne permet toutefois pas de présenter chaque sculpture dans sa configuration spatiale optimale. C’est pourquoi chaque exposition de Yoon-Hee est un événement important. Certaines furent exceptionnelles et méritent à ce titre d’être évoquées.
C’est à l’occasion d’expositions que Yoon-Hee a pu faire de véritables monuments en extérieur. Le plus ancien est sans doute l’ensemble de colonnes dressées en 1987 sur la pelouse du centre d’art de Brétigny-sur-Orge en Ile-de-France: dix-huit tubes géants en acier goudronné d’un noir luisant s’élevant jusqu’à cinq mètres de hauteur et décrivant un triangle de dix mètres de côté. En 1996, c’est un bloc d’acier de plus vingt tonnes découpé en tranches comme un gâteau à l’aide d’un chalumeau oxycoupeur géant qui est installé dans la cour du centre d’art de Gennevilliers en région parisienne. Enfin, en 1999, elle place dans la forêt du parc du Dourven, en Bretagne, une pelote de fil d’acier de quatre tonnes enroulée sur elle-même qui semble se fondre dans le paysage, comme si elle avait toujours été là, malgré ses dimensions imposantes. Pour chacune de ces trois œuvres, nul projet. Ni études, ni dessins préparatoires. Simplement la rencontre de l’objet adéquat, au moment voulu, comme une évidence qui s’impose d’elle-même.



Avec ses 500 m2, la galerie Nikki Diana Marquardt à Paris a permis à Yoon-Hee des installations d’une très grande précision. Une pièce de1990,«D’elle-même», y était particulièrement en valeur; il s’agit de trois coupelles semi-sphériques de 140 cm de diamètre, en aluminium, à l’intérieur desquelles, tracés au balai avec du goudron, apparaissaient des signes ressemblant à des idéogrammes.
La pièce de 1987 intitulée «Catastrophe intime», constituée de deux épaisses dalles de laiton verdâtre, a connu un destin étrange avant d’être achetée en 1991 par l’Etat français pour figurer dans la prestigieuse collection du Château d’Oiron : trouvée et acquise par Yoon-Hee, la pièce est ensuite volée. Par un incompréhensible hasard, elle la retrouve dans une usine, prête à être refondue, et la récupère in extremis.


Les pièces de Yoon-Hee ont toutes une histoire. C’est généralement d’abord celle de leur «invention» puis celle de leurs différentes installations. Les lieux d’exposition imposent parfois des contraintes qu’il faut résoudre par des détours complexes. Ainsi, pour faire entrer «Violence calme» dans la galerie Pierre Colt à Nice, il a fallu construire sur place une structure d’acier, la démonter avant le vernissage et la remonter pour sortir la pièce. De même en 1996, la Manufacture des Oeillets à Ivry-sur-Seine ne présentait de porte assez large pour faire entrer «Inconnu», un fragment de sphère en aluminium de 187 cm de diamètre pesant un peu plus d’une tonne. Installée sur le parquet grossier de cette ancienne usine, en vis-à-vis avec «Inoubliable», une masse dressée entièrement déchiquetée comme si elle avait subi une tempête de feu, «Inconnu» imposait le calme de sa surface doucement animée comme l’eau d’un lac, invitant le spectateur au recueillement et à la méditation.

L’une des plus belles expositions de Yoon-Hee s’est déroulée à la Galerie du Dourven, une ancienne maison particulière transformée en centre d’art, dans un parc arboré orienté face à la mer, en Bretagne, un site d’une exceptionnelle qualité. Les dessins étaient présentés en lumière naturelle dans une galerie vitrée tandis que les sculptures avaient été conçues spécialement pour le parc. Du plomb fondu, comme un instantané de la pluie qui touche le sol, avait été répandu dans un pavillon de douaniers vieux de trois siècles, tandis qu’un petit bloc de cuivre cylindrique, meulé jusqu’à faire apparaître la couleur pure du matériau, un rose si vif qu’il en est éblouissant, avait été installé sur un promontoire rocheux dominant la mer aux teintes changeantes.


Orient / occident
Cette pensée proprement asiatique dont on constate la permanence à travers l’œuvre de Yoon-Hee, position assez rare aujourd’hui qui la rapproche d’artistes tels que Lee Ufan qui revisite les enjeux de la tradition sur un mode non figuratif ou Kim Soo-Ja dont le nomadisme rappelle l’errance des peintres et des poètes anciens, cette pensée s’est développée dans un contexte radicalement occidental. L’exaltation des matériaux et leur mise en espace chez Brancusi, l’affirmation violente des masses chez Richard Serra, le concept d’entropie chez Smithson (Yoon-Hee se réfère à des pièces fameuses de 1969 comme «Asphalt Rundown» ou «Glue Pour»), l’excès propre à la vision humaniste de Kounellis, autant de références fortement inscrites dans la mémoire de Yoon-Hee. Si l’on veut la situer aujourd’hui sur la scène artistique mondiale, on s’aperçoit qu’elle est rigoureusement seule à produire une œuvre de ce genre. La sculpture est rare et ceux qui en perpétuent la pratique continuent à sculpter, à intervenir sur le matériau pour le plier à leur intention, comme par exemple Richard Deacon. C’est en dressant un paradoxe qu’on tentera de comprendre la place de Yoon-Hee: les tableaux vivants de Vanessa Beecroft où tous les éléments sont maîtrisés consciemment jusque dans les moindres détails, qui parlent de la société, de ses pompes, de ses contraintes, de sa violence, constituent peut-être ce qui est diamétralement opposé au travail de Yoon-Hee.


